생태비평의 이론적 다양성과 실용주의적 목적 달성

이러한 실용주의적 목적 달성을 위 해 생태비평이 이론적 다양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생태비평론을 ‘다양한 자연관의 문학적 수용’이라고 규정하면, 생태비평의 활발 한 연구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자연관의 연구와 고찰로 이어진다 하겠다. 자연관 자체도 사실 하나의 단순한 사고라기보다는 철학, 윤리, 종교 그리고 다양한 문 화 요소들을 아우르는 복합적인 사고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어느 문학작품에 드러난 자연관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자연관과 필연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다양 한 사유의 실타래를 함께 풀어헤치는 과정이다. 환언하면, 생태비평은 단순히 자 연 자체의 본질적인 의미나 가치를 찾는 작업을 넘어 인간의 삶 전체와 자연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노력이다. 현대 생태비평론이 수용하는 자연관은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네덜 란드 철학자인 아르네 내스(Arne Naess)로부터 시작된 심층 생태주의와 머리 북친(Murray Bookchin)을 선두로 하는 사회 생태주의가 그 중 가장 많은 관심 을 받고 있는 자연관이라 하겠다. 본 논문은 헉슬리의『멋진 신세계』를 사회 생 태주의의 시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제 2장에서는 사회 생태주 의 이론의 배경, 즉 이론의 시발점과 변화, 발전 과정 및 자연을 바라보는 근본 적인 시각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질 것이다. 물론 심층 생태주의에 대한 언급이 선행될 것이다. 이는 사회 생태주의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두 자연관에 대한 고찰은 생태 문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 반적인 이론 배경을 제공할 것이며, 특히 사회 생태학적인 관점은 제 3장에서 이 루어지는 텍스트 분석의 비평 틀이 된다. 신세계는 엄격한 계급사회다. 인간들은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부화되며, 그 실험실에서 그들의 지능과 성격은 계급적으로 조작되어 다섯 개의 계층, 즉 알파(Alphas), 베타(Betas), 감마(Gammas), 델타(Deltas), 그리고 엡실론(Epsilons)으로 나뉜다(3). 이중에서 알파는 두뇌가 우수한 계층으 로 지배층에 속하는 한편, 엡실론은 지능이 가장 낮아 단순 노동에 적합하게 대 량생산되는 계층이다. 완벽한 카스트 제도가 과학 기술에 의해서 형성되고 유지 되며, 지배-피지배의 인간관계가 자연스럽게 고착화된 사회가 이 ‘세계국’이다. - 5 - 따라서 사회 생태주의는 이 사회의 작동 원리와 다양한 문제점들을 들여다보는 유효한 비평의 틀이다. 엄격한 계층 형성과 유지 수단이며 동시에 사회 통제의 수단으로 등장하는 여러 가지 과학적 기법과 장치들, 예컨대, 보카노브스키 과정 (Bokanovsky’s process), 인간 복제(cloning), 수면 최면요법(hypnopaedia), 그 리고 소마(soma)의 상습적 복용 등은 물론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지배 성향 혹 은 자유에 대한 열망 등을 사회 생태주의의 관점으로 상세히 분석하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에 드러나는 인종, 성별, 나이, 외모 등의 차이에 기인한 차 별의 문제 그리고 이 사회에 만연한 포디즘(Fordism)과 소비 지향적 삶이 보여 주는 사회 생태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텍스트 분석은 결국 작가의 생태 의식이 이 소설 속에 어떤 방식으로 녹아들어 있는지, 그리고 소설 곳곳에 서 보여주는 반 생태적 문제들에 대해 작가가 어떤 해결 방안을 암시하고자 하 는지를 탐색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또, 그것은 이 소설이 과학과 물질문명을 비 판하는 디스토피아적 소설이라는 단순하고 정형화된 해석을 넘어 진정한 생태적 텍스트로서의 가치를 지닌 작품임을 밝히는 과정이 될 것이다. 한편, 사회 생태 주의의 실천적인 목적은 결국 하나의 논리로 귀결되는데, 그것은 바로 사회 정의 (social justice)의 실현이다. 제3장의 끝 부분에서는 사회 정의란 무엇이며 그 실천 방향을 모색함으로써 헉슬리의『멋진 신세계』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이코토 피아(ecotopia)의 모습을 점검해 보고자 한다. 요컨대, 헉슬리의『멋진 신세계』 가 사회 정의의 실현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분석은 결국 이 소설이 진 정한 생태적 인식을 담고 있는 보기 드문 생태문학 텍스트임을 밝히는 효과를 거양하리라 기대한다. - 6 - 제2장 자연과 사회 머리 북친(Murray Bookchin)은 그의 저서『사회 생태주의와 심층 생태주의: 생태주의 운동의 도전』(Social Ecology versus Deep Ecology: A Challenge for the Ecology Movement(이후 SEDE로 약칭함))2)에서 생태학이나 생태주의 라는 용어의 사용에 있어서, 이 용어가 자연을 남용하는 인간의 문제를 모두 해 결해 줄 수 있는 만능열쇠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생태 주의라는 용어에 대해 오해나 남용의 소지가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는 또 생태주의라는 말이 자칫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개념에 반하거나 흠집을 낼 여지가 있다고 기술한다. 나아가 생태주의를 단순히 근본적인 문제는 무시한 채 겉으로 드러나는 생태계 파괴의 치유에만 몰두하는 환경주의에 반하는 용어로 생각되거나 사용되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2). 따라서 생태주의라는 개념에 대한 접근은 지극히 조심스럽다. 그것은 다양한 편견과 특수한 이해관계를 배제 한 혹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아우르는 바탕에서 끊임없이 형성되고 변화하는 이 론이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최근에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기상 이변과 해수면 상승에 대한 보고 및 예상, 기후 변화로 인하여 지역에서 자생하는 생물 종들의 감소 및 변화, 사막화 등은 이제 더 이상 놀라움을 주는 뉴스가 아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생태주의 와 함께 생태비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류가 직면한 생태 위기에 보다 근본적인 접근과 해결책을 요구하 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심층 생태주의(deep ecology), 사회 생태주의(social ecology), 생태 여성주의(ecofeminism), 종교적 관점이 접 목된 기독교 생태주의, 불교 생태주의 등, 다양한 생태관이 출현하였음은 주지하 는 사실이다. 이 장에서는 그 중 사회 생태학이 보다 포괄적이고 현실적으로 유 효한 생태관을 담아낸다고 보고 우선 그 점을 예증하기 위하여 사회 생태학을 심층 생태학과 비교할 필요가 있다. 즉, 심층 생태학에 대한 연구는 사회 생태주 의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다. 2) 이 글은 원래 학회지 Green Perspectives: Newsletter of the Green Program Project (1987) 4-5쪽에 실린 글인데, 여기서 참고한 것은 온라인 포스팅을 위해 재편집된 글이다. - 7 - 전술한 대로, 심층 생태주의의 태동은 1970년대 초에 내스가 기존의 자연관인 인간중심주의를 부정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심층 생태주의의 첫 번째 특징이 바 로 인간중심주의 사고에 대한 부정인 것이다. 브라언 노톤(Bryan G. Norton)은 인간중심주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가치는 그것이 인류가 규정한 그리고 인류를 위한 가치에 얼마나 공헌하는가에 의해 평가된다는 사고를 기반 으로 한다고 설명한다. 더불어 인간중심주의는 자연의 모든 요소들은 인간의 흥 미와 관심을 만족시키는 도구적 가치를 지닌다고 본다(133). 심층 생태주의자들 은 오늘날의 환경 문제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그러한 잘못된 인식과 태도에 기 인한다고 규정한다. 그래서 심층 생태주의는 오래 동안 인류를 지배한 자연관, 즉 자연으로부터 인간과 산업화된 사회를 분리하고, 인간은 자연의 우위에 있으 며 관리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세계관에 대립된다(Sessions 1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