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herapeutos
멋진 신세계의 인문학적 자연과학적 논쟁 본문
소장이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리는 그들로 하여금 전원 스포츠를 사랑하도 록 조건화시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모든 전원 스포츠에는 반드시 정교한 장비를 사 용하도록 조치해 놓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운송 기관뿐 아니라 공업 제품도 소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전기 충격도 주는 것입니다. Primroses and landscapes, he pointed out, have one grave defect: they are gratuitous. A love of nature keeps no factories busy. It was decided to abolish the love of nature, at any rate among the lower classes; to abolish the love of nature, but not the tendency to consume transport. For of course it was essential that they should keep on going to the country, even though they hated it. The problem was to find an economically sounder reason for consuming transport than a mere affection for primroses and landscapes. [. . .] "We condition the masses to hate the country," concluded the Director. "But simultaneously we condition them to love all country sports. At the same time, we see to it that all country sports shall entail the use of elaborate apparatus. So that they consume manufactured articles as well as - 49 - transport. Hence those electric shocks." (18-19) 소비를 촉진하기 위하여 꽃을 혐오하면서도 동시에 좋아하도록 전기충격요법을 가한다는 설명이다. 즉, 하층민들이 전원으로 나가면서 교통수단을 소비하는 한 편, 거대하고 값비싼 운동기구를 소비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개인의 의견이나 선호도 그리고 인간 개인의 존엄은 무시되고 개인은 이제 소비의 주체로서의 가 치만 지니고 있을 뿐이다. 이런 소비주의와 물질주의는 조건화되어 아무도 그처 럼 조작된 문화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오늘날 생태계 파괴와 환경문제를 유발하 는 근본 원인은 산업제일주의와 과소비 문화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구 생 태계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소비를 미덕으로 권장하고 부추기는 인간 동물이다. 과소비는 대량생산을 야기하고, 결국 대량생산은 무분별한 자연 파괴로 이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생태계의 건강을 위하여 인간은 무엇보다도 검소한 삶을 실천해 야 한다. 나아가 우리는 현대 과학 기술의 진보, 경제 성장을 위한 착취와 제국 주의 등이 생태계 파괴와 사회 불공정을 야기한다는(Coates 4)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 50 - 제4장 결론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환경 위기의 근원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을 상품화 하고 모든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는 현대사회의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그 중요 한 원인임을 깨닫게 된다. 인간이 지구를 수탈하는 행태는 한 계층이 다른 계층 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모습을 닮아있다. 그래서 만약 사회적 정의가 실현된다면, 생태적 정의도 실현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Coates 3). 같은 맥락에서 헉슬 리의 신세계를 진정 멋진 신세계로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적 정의는 생태적 정의 와 함께 실현되어야 한다. 신세계의 통제를 거부하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하 여 마침내 외딴 곳으로 떠나는 존의 모습에, 버나드가 소마와 조건화를 거부하고 자유롭기를 갈망하는 모습에, 노예처럼 살았던 린다와 같은 사람이 더 이상 나오 지 않기를 바라는 존의 희망 속에, 그리고 소비제일주의 문화를 비판하는 이 소 설의 서사 속에 사회적 정의와 생태적 정의를 함께 실현해야 한다는 헉슬리의 무거운 메시지가 담겨있다. 21세기의 초입에서 지구촌의 가장 뜨거운 관심 중 하나가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의 문제이다. 인류가 대면하고 있는 이러한 어두운 생태적 현실이 문학 작품 의 역할에 대한 재정립을 요구한다. 더불어 이러한 현실은 작가는 물론 비평가와 독자의 역할까지 재고하게 만든다. 문학이 결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는 전제가 참이라면 오늘날 환경문학과 생태비평이 지니는 의의는 지대하다. 헉슬리는 놀랍 게도 이미 1930년대에 오늘의 환경위기를 예상하고 이 소설을 썼다. 특히『멋진 신세계』에서 다루고 있는 과학기술의 문제는 앞으로도 생태비평계는 물론 인문학적으로 그리고 자연과학적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논쟁의 주제가 될 것이다. 더 구나 사회제도와 생태학적 문제의 관련성을 엮어낸 헉슬리의 혜안은 바로 오늘 의 생태비평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논쟁의 핵심을 꿰뚫고 있는 것이다. 전술하였듯이, 사회 생태주의는 생태 위기의 해결방안을 사회제도의 변혁에서 찾고자 한다. 모든 분야에서 자연과 사회는 상호작용하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 실을 인정한다면, 생태문제에 관한 논의에서 사회를 제외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다. 사회 생태주의의 자연관에 비추어 본 헉슬리의 신세계는 반 생태적인 사회임 - 51 - 이 자명하다. 신세계에서 인간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복제 기술에 의해 생산되며 그들의 운명은 조건화와 억압적인 훈육을 통해 결정된다. 과학기술의 정치적 이용을 통하여 지배층이 하위 계층을 철저히 통제한다. 생태 윤리적 측면 에서만 볼 때에도 인간 복제나 조건화와 같은 과학 기술의 남용은 큰 비난을 야 기한다. 인간 복제가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것임은 분명하다. 또한, 이 세계는 엄격한 계층 사회이며 그러한 계층을 정당화하는, 학습된 논리는 인간 의 자연 지배를 용인하는 논리로 전이된다. 헉슬리는 소수의 세계 통치자와 알파 계층의 지배와 억압이 얼마나 사회를 피폐하게 하는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러한 사회적 억압과 통제가 궁극적으로 생태계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다는 사실을 고발하고 있다. 헉슬리가 세계국의 사회통제를 비판하는 만큼 그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의 가치를 옹호하고 있다. 사회 안정을 최고의 가치로 간주하는 신세계에서 구성원 들의 자유의지는 박탈당한다. 비윤리적이고 잔인한 훈육과정을 거친 하층민들은 자유의 개념마저 상실한 존재다. 이 소설 속에서 자유의 가치를 가장 열정적으로 옹호하는 인물은 존이다. 작가는 자유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세계국인들과 존과 버나드 등, 자유옹호론자들을 대비시키면서 독자들이 자유의 가치를 재확인하도 록 유도한다. 특히 세계국과 인디언 보호구역의 삶의 방식을 병치시킴으로써 세 계국의 사회통제가 야기한 사회적 억압의 폐해를 고발하고 있음은 물론 구성원 들의 자유를 박탈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들의 생태의식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세계국은 일차 자연이 이차 자연에 흡수되 어 이차 자연의 모습이 사라진 기형의 사회다. 따라서 헉슬리의『멋진 신세계』 속의 세계국은 사회적인 디스토피아이면서 동시에 생태적인 디스토피아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소설의 주제는 인간평등과 함께 생태평등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 다. 북친이 강조하듯이, 생태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인류는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안고 있는 온갖 종류의 불평등의 문제, 자본과 노동의 부조화 그리고 계층적 이원론에 기울어 있는 문화의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불평등한 사회 구조 야 말로 생태 문제를 야기하는 심각한 근원임으로 사회구조의 개선이 생태문제 해결의 초석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의 구조개선은 곧 사회정의를 실 - 52 - 현하는 길이다. 사회 도처에 존재하는 억압과 불평등의 요소를 제거하여 모든 사 람이 평등하고 차별받지 않은 사회의 성취는 곧 생태적로도 건강한 에코토피아 로 가는 길이다. 차이가 차별의 빌미로 이용되지 않고, 차이가 오히려 사회적, 생 태적 다양성을 풍부하게 고양하는 소중한 자산으로 여겨질 때, 비로소 인류는 인 간평등과 생태평등이 보장된 지구 공동체의 실현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 다. 이 논문에서는 사회생태학의 주장에 의존하여 헉슬리의『멋진 신세계』속에 드러난 생태의식을 추적하였다. 그러나 사실 어느 한 이론이나 비평의 틀이 생태 문제의 해결을 위한 유일한 대안사고라고 단언할 수 없다. 사실 심층 생태론이나 생태여성주의 등의 입장들도 그 강조점이 다를 뿐이지 모두 환경문제를 개선하 거나 해결하기 위한 유효한 담론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음은 당연하다. 자연관의 차이도 차별하고 배척할 대상이 아니라 담론의 다양성이 건강한 생태적 실천을 담보한다는 견지에서 보면 그것은 수용의 주체다. 사실 사회 생태학도 친생태적 인 문화와 사회의 도래를 앞당기는 길은 무엇보다도 인간중심주의의 극복이 최 우선 과제라고 주장하는 심층 생태론자들의 주장을 귀담아 들을 일이다. 물론 심 층 생태학에서는 반대로 생태적 위기 극복을 위해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해결책 을 제시하는 사회생태학이나 실용주의 환경론의 입장을 포용할 필요가 있을 터 이다. 사회생태주의적 시각도 그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굳이 이 논문에서 비평의 틀로 삼은 이유는 헉슬리가 창조한 신세계가 철저한 계층 사회이고 첨단 과학의 힘을 이용한 사회 통제가 만연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또한, 생태 위기의 극복을 위해서는 사회 제도의 변화가 절실하다는 사회생태론의 주장에 크게 공감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헉슬리는 독자에게 친생태적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경고 하면서 인간평등과 생태평등을 동시에 저해하는 사회통제가 유발하는 심각한 폐 해를 직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영어영문학, 헬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데이터 중심의 접근방법 (0) | 2020.09.05 |
---|---|
외국어 학습환경 발전 (0) | 2020.09.05 |
신세계의 가부장적 가족 형태와 전체적인 사회 구성 (0) | 2020.09.03 |
자유에 대한 신세계 국민들의 공통적 인식 (0) | 2020.09.03 |
사회통제에 사용되는 과학 기술의 문제점과 공리주의 (0) | 2020.09.03 |